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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

대도시 고독한 이들의 대변자


글 Windy Lee 에디터


20세기 대도시 속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를 포착해 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이 현재까지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관에서 마주친 회화 작품 앞에서 시공간적 제약이나 추상적 표현 기법, 혹은 매체의 독창성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호퍼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감동이 더해지는 이유는 호퍼가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여 본질과 그 내면을 포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공감대’를 끌어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공감대’란 사실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쉽게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기에, 호퍼의 작품들과 형성된 ‘공감대’는 때론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별히 뉴욕이란 렌즈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와 인간 본연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는 이번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회고전은, 21세기 대도시 안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위안도 주리란 믿기에, 바쁜 일상 속에 고독에서 고립으로 가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전시를 꼭 놓치지 않기 바란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Edward Hopper’s New York’이라는 주제로 20세기 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인 에드워드 호퍼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호퍼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대여해 자신의 집무실에 두고 감상했을 정도라고 한다.



뉴욕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사망할 때까지 60년 동안 그의 고향과 다름없었다. 호퍼 스스로 말년에 ‘뉴욕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언급하였다. 그가 이런 마음으로 뉴욕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뉴욕은 호퍼의 생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라 할 수 있다. 또한 시대적인 흐름이나 대중적인 화풍과는 달리 묵묵하게 자신의 사실주의적 회화 세계를 지켜내며 10여 년간 무명 화가로 지냈던 호퍼에게 첫 공식 개인전을 열어준 것이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전신이었던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이었기에 이번 회고전은 공신력과 매력을 모두 갖추었다 할만하다. 특히, 이번 회고전은 휘트니의 광범위한 소장 작품들과 여러 곳에 흩어진 호퍼의 주요 작품들을 대여작들로, 그의 초기 작품들부터 후기 작품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특히 스케치, 일러스트, 드로잉, 판화, 페인팅 등 매체별로 그의 다양한 작업과 그와 관련된 이력, 서신, 사진, 저널까지 총망라하고 있어, 데이비드 호퍼의 회고전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뉴욕주 나이약(Nyak)에서 태어나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도 ‘에드워드 호퍼는 화가가 될 것이다’라고 직접 써넣은 필통을 앞에 두고 창 너머 허드슨강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뉴욕 예술 학교로 진학한 에드워드 호퍼는 스승인 사실주의 화가 로버트 헨리의 영향을 받았는데, 로버트 헨리는 인상주의 화가 마네 등에 영향을 받아, 도시의 전경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으며, 호퍼가 도시와 도시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격려했다. 대학 졸업 후, 호퍼는 생업을 위해 뉴욕의 광고 회사에 취직해 일러스트레이터를 그렸지만, 결국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후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난 파리 및 유럽 여행에서 접하게 된 입체주의나 추상주의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오히려 자신만의 사실주의적인 화풍을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게 된다.



데이비드 호퍼의 작품에는 무명의 시절을 딛고 수채화를 그리며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그의 생을 마감한 1960년대까지 자신의 눈에 비친 뉴욕의 모습을 잘 포착되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시대적 상황 속에 대도시로 변해가는 뉴욕의 모습과 도시인이 돼가는 그의 정체성과 궤를 같이하는 뉴요커의 이미지를 화폭에 잘 담아냈다. 하지만, 이번 회고전에서 잘 확인할 수 있듯이 ‘호퍼의 뉴욕’은 20세기 대도시를 대표하는 초상은 아니다.


호퍼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 2차 세계 대전이다. 대공황이라는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부흥을 맞은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국가였고, 뉴욕은 그 풍요를 온몸으로 증명하던 도시였다. 세계적인 대도시로 엄청난 변신을 거듭하던 뉴욕의 고층 빌딩들은 높이만으로도 인류 문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고, 브루클린 브리지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이 도시의 상징적인 건물들이 들어서며, 다양한 인구 증가를 겪던 때였다. 세계적인 대도시로 발전해가던 뉴욕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그는 도시의 활기나 도시의 빈곤에 주목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이와는 동떨어진 일상 속 도시인의 고독과 공허, 그리고 외로움과 상실감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고립에 가까운 고독과 외로움을 텅 빈 공간에 두고, 자연광과 인공조명의 대조적 조화와 절제된 프레임을 사용해 그 정서들을 극대화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영원처럼 포착한 그의 작품들의 특별함은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 근원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지속적으로 깊은 파고를 그려내고 있다.



한 장의 스냅 사진처럼 느껴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사진 기법이 적용되었다. 특히, 호퍼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로 불리며, 20세기 현대 사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진작가 폴 스트랜드의 작업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폴 스트랜드만의 독창적 사진 기법은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라 불리었는데, 도시 풍경, 인간, 기계 등을 선명하고 정확하게, 기하학적 구조 안에 담아내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는 사실, 사진술의 발달로 인해 세상을 재현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회화의 역할에 사망을 공표하고, 추상 회화와 입체주의가 등장하여 회화사의 흐름이 대대적으로 바뀐 시기였다. 그럼에도, 호퍼는 그 당시 회화의 적으로 여겼던 사진의 기법을 차용하여, 재현과 묘사 이상의 분위기, 즉 정서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하여 사실주의 회화만의 매력과 특징을 역설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실제적으로 도시인의 외로움이 빛과 공간적 프레임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세계는 1960~70년대에 팝아트, 신사실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현대 작가들과 영화감독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으며, 광고 및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수없이 오마주 되며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스릴러의 대가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나 구스타프 도이치의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여행의 기술’과 ‘슬픔이 주는 기쁨’ 등이다. 특히,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라고 기술한 부분은 호퍼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는 관객의 공감대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번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회고전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Nighthawks’(1942)를 비롯해, ‘Office at Night’(1940), ‘Early Sunday Morning’(1930), New York Movie(1939), ‘Gas’(1940), ‘Night Window’(1929) 등을 3월 5일까지 볼 수 있으며, 4월부터는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한국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_99 Gansevoort St, New York, NY 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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