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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윤 ‘김치는 에너지’

글: 맘앤아이 편집부


카메룬계 미국인 아프리카 윤은 ‘김치는 에너지’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일 뿐이지만, 아프리카 윤에게는 우연히 한인 마트 앞에서 만난 한인 할머니가 전수해준 김치 그리고 한식은 뉴욕에서 비만과 우울로 점철되었던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준 기적과 같은 선물이었다. 최근 ‘THE KOREAN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이란 에세이를 출간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식 전도사로 나선, 작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아프리카 윤을 맘앤아이가 서면 인터뷰로 만나 보았다.

Q.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프리카 윤입니다. 제 마음에 소중한 것들을 표현하는 도구로 영화, 텔레비전, 음식, 스포츠를 사용하는 이야기꾼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인간의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아프리카 윤이라는 이름은 작가로서의 필명인가요? 아프리카 윤은 제 본명입니다. 물론 20대까지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살았는데요. 그 당시에도 일종의 별명으로 사람들이 저를 아프리카라고 불렀습니다. 언젠가는 제 이름을 평생 한 번만 바꾸고 싶었는데(서류 작업을 한 번만 하고 싶었거든요), 아프리카라는 제 별명을 법적 이름으로 하기로 했죠. 성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 성인 윤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프리카 윤은 아프리카 출신 여성으로서 제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Q. 작가님의 이력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재능과 소신과 열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UN에서 연설을 하고, 어린 십대 학생이 이탈리아 Golden Graal Award에서 인도주의상을 수상한 이력이 주목을 끕니다. 어릴 때와 학창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올림픽 선수 출신이자 UN 외교관이셨고, 어머니는 활동가이셨습니다. 부모님은 제 성장 과정에 확실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기회를 잡고 만들기도 했습니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했고 어렸을 때는 세계적으로 시대 흐름이 크게 바뀌던 때였습니다. 또 저는 어렸을 때 영화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유엔 대사였던 제 아버지가 카메룬에 거주할 당시 여러 유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행사에는 영화배우, 활동가, 운동선수, 대통령이 모두 섞여 있었고, 그때 저는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어린 시절의 제 오해가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할 때 세계적인 변화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것들이 뒤섞여 제 인생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부터 연설을 들을 수 있었고, 연설한 분들은 여러 분야에 지원을 하고 싶어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저의 아이디어를 말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MTV였습니다. 저는 MTV와 파트너가 되었고, MTV의 사장님과 MTV 내 사회 공헌 부서에서 저의 독특한 브랜드의 일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거기서부터 그들은 저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제가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특히 처음에 관련 업계 사람들을 많이 소개 받았고, 그 다음부터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적극 활용해서 결과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 스스로가 마케팅 요소로 활용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마케팅을 좋아합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마케팅 업계에서 경력을 쌓고 싶습니다.


Q. 작가님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할머니가 계시지요. 한국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주신 한인 할머니와의 스토리를 들려 주시겠어요? 29살이 되었을 때 저는 매우 우울했고 비만인 상태였습니다. 남한테 언제나 ‘네(yes)’를 말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부정적이었죠. 엄마와 아내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상태로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건강부터 관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시 제 어머니는 어느 한인 부부에게서 노스 저지(North Jersey)의 아파트를 사셨고, 저에게도 아파트를 사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맨해튼과 노스 저지를 오가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챙기기로 했고, 일단은 시티에 너무 많이 있지 않기로 결정했죠. 그래서 뉴저지에 머물고 있었고 에지워터 강가에서 심리 치료사를 만나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에 다녔던 타운으로 드라이브를 갔습니다. 그 지역 주변으로 레오니아, 포트 리, 팔리세이드 팍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어머니께서 교회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가 한국 전통 난방 침대를 파는 가게를 소개해 주셨는데,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방문해보니 폐업했더라고요. 가게 근처에 미니 마트가 있어 지나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한국산 버터 크림빵 샘플을 주셨어요. 빵을 먹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너는 너무 뚱뚱해”라고 말하는 거예요. 뒤돌아 보니 한 한국 할머니였습니다. 카메룬에서는 어른들을 공경해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 공경의 가치를 늘 배우죠. 제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불편하면 질문하라”라는 원칙을 알려주시면서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할머님께 “제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라고 물었고, 그때 그분이 “한국 음식”이라고 답하셨습니다. 건너편에 있는 H마트를 가리키면서요. 그 후로 1년 정도 할머니와 매주 일요일 만나서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할머니와의 우연한 만남 이후에 삶이 완전히 달라진 작가님의 지금 모습을 할머니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요. 할머니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그 할머님은 굉장히 강한 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살 빠진 제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어떠냐고 물으면 할머님은 ‘아니 아직 살 빼야 해’라고 말씀하셨죠. 그런 반응이 저는 너무 재미있어서 웃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시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Q. ‘The Korean’ 책을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당시 출산 후 몸이 좀 아팠고, 특히 갑상선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아팠기에 혹시 낫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때 치유를 위해 한식을 떠올리게 되었고, 할머니와 함께했던 그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저를 다시 일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주위에 한식 먹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한인 가정도 많고, SNS를 통해 한식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정말 많아졌습니다. 직접 한국에 가보기도 했고요. 저는 인생을 되돌아보며 그간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공유하면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전에는 제 이야기를 자세히 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 뮤지컬 원고는 썼지만 제작은 안 했고요. 그 이후 결혼과 육아로 바빴죠. 그래서 마침내 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그런 일련의 단계를 통해 저 스스로 감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Q. 미국에서도 ‘김치의 날’을 제정하는 주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수퍼 푸드로 불리는 ‘김치’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제게 김치는 에너지입니다. 김치만큼 몸에 효과가 있는 음식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김치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기에, 전 세계 많은 이들이 김치에 대해 알고 건강 개선에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배추김치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김치가 있고, 모두 맛있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김치를 가진 한국 문화는 참 대단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김치가 삶을 바꾸는 역할을 했으니, 알게 돼서 감사한 음식이면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 김치를 직접 담그신다고 들었어요. 하와이에도 한국 마켓이 있나요? 여러 종류의 김치 중에 가장 맛있게 담글 수 있는 김치,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김치는 무엇인가요? 한국 마켓이 많이 있습니다. 하와이는 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식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일단 H 마트가 있고 반찬 가게와 김치는 어디를 가나 있습니다. 동시에 제가 직접 김치를 담급니다. 너무 바쁘면 사서 먹기도 해요. 하와이뿐만 아니라 1년 중 상당 기간을 저는 카메룬에서 시간을 보내는데요. 특히 작년에 카메룬에서 머물 때 우리 가족은 백김치에 푹 빠졌었습니다. 백김치 국물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고, 아침에 국물을 마시기도 하고, 끼니마다 백김치를 곁들여서 먹었죠. 카메룬에 있던 제 오빠는 지난 여름에 김치에 완전히 빠졌어요. 남편은 깍두기를 좋아해요. 아이들은 파김치와 고춧가루가 든 배추김치를 제일 좋아하고요. 저는 그 모든 김치를 좋아하고요. 제 김치냉장고는 다양한 김치로 가득 차 있어요. 반찬만 보관하는 냉장고도 하나 더 있고요.



Q.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세 자녀와 남편과 함께 찍으신 가족 사진을 보았는데요, 한국인 남편과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남편과의 이야기는 너무 긴 이야기라 여기서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책을 보시면 아주 자세히 나와 있어요. 저희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국인이면서 흑인인 것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한번은 제 아이들이 밖에서 친구들과 자신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제 아이들은 자신이 아름답고, 아시아인이자 흑인이고 한국 혈통이 있기 때문에 피부색이 밝은 갈색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하하). 어떤 면에서 아이들이 카메룬, 하와이, 부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여러 나라의 유산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 같거든요. 아이들은 K팝 스타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아프리카 혈통이 있기에 자신들의 음악을 ‘아프로 K팝(Afro K pop)’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저는 그 꿈을 매우 응원해요. 실제로 아이들이 요즘 춤과 음악을 배우고 있어요. 언젠가는 ‘맘앤아이’에서 저 말고 아이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Q. 운영하시는 블랙윤이콘(Blackyoonicorn)은 어떤 곳인가요? 블랙윤이콘은 애니메이션, 문학, 연극 및 기술 분야의 창작 작업을 뒷받침하는 제작사입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에 만들었고요. 따로 사무실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제가 대표이고, 기술적인 부분은 남편이 도와줘서 만들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직원들을 파트타임/풀타임의 계약직 직원을 재택 근무 형식으로 구해서 일하고 있어요. 홈페이지를 보시면 젓가락 숟가락 세트, 한국어 단어 공부 플래시 카드, 앞치마 같은 것을 판매하고 있어요. 이번 책도 마찬가지고요. 블랙윤이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종 간의 문화적 이해를 높이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 자체가 흑인(아프리카윤은 카메룬계 미국인)과 아시아인(남편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주로 흑인과 아시아 문화에 중점을 둡니다. 저는 이런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유년 시절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핵심 고객을 어머니와 아이들로 보고 있어요.


Q.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한식 식단과 함께 부단한 운동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셨어요. 2008년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3개월간 1,000마일의 마라톤에 참가하셨고, ‘아프리카 101 프로젝트’ 마라톤 완주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셨지요? ‘아프리카 101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아프리카 101 프로젝트’는 제가 홀로 진행했던 마라톤 프로젝트였습니다. 제가 뉴욕 한인 할머님을 만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 자주 걷고 달렸거든요. 어느 날은 달리는데, 문득 살을 빼기 위해 특별한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오프라 윈프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겸 체중을 감량을 위해 달리기를 하자라고 결정했죠. 당시 제가 비건 생식 다이어트를 했는데 그게 오프라 윈프리의 프로그램을 보고 시작한 거였거든요. 달리기를 하며 에이즈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이면서 많은 사람의 다이어트 하는 걸 격려하자는 의미를 담아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마라톤을 했어요. UN 건물에서 오프라 윈프리 스튜디오까지 두달 하고 이틀이 걸렸고, 이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까지 마라톤을 했어요. 마라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조만간 여름쯤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마라톤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한국에 가서 한국의 문화가 내 삶에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경의를 표하고 싶고요. 그 마음을 일종의 마라톤을 하면서 표현하고 싶어요. 달리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가 달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문화적 경계를 넘어 통합하고 포용할 수 있음을 보았으면 해요.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아시아인 증오 범죄가 일어나고 있잖아요. 저를 도와준 할머니와 닮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공격받는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이 아시아인의 삶을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동안 저를 도와준 많은 이들을 제가 다시 돕고 싶어요. 할머니를 위해,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해, 제 이야기를 전하고, 마라톤을 진행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할 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 윤

작가, TV쇼 진행자, 사회활동가

저서 <THE KOREAN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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